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인 이야기/비판 (문단 편집) === 4~5권 === * [[데키무스 브루투스]]를 데키우스 브루투스로 잘못 표기하였다. 번역 오류인줄 알았는데 [[일본어]] 원문에도 데키우스 브루투스라고 되어 있어서 빼도박도 못하게 오기 확정. 또한 [[마르쿠스 브루투스]] 부분에서도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에 대한 미움이 지나친 나머지 되도 않는 왜곡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이는 해당 항목 참조. * 카이사르에게 적대한 원로원파 거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기원전 54년 집정관)]]를 ‘에노발부스’라고 표기하고 있다. 일본어 표준 표기도 アヘノバルブス인데 왜 이렇게 표기하여 독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는지는 불명. * 로마의 사제직에 대해 일반 시민 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서술했지만, 실제 사료를 보면 로마의 사제직은 2종류가 있는데, 폰티펙스([[신관]])는 시오노의 표현처럼 로마 시민이 취임하는 일종의 '종교직 공무원'이어서 일반 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지만, 신전에서 신에게 예식을 올리는 사제인 [[플라멘]]([[사제(성직자)|사제]])으로 선출되면 말(馬)을 만지거나 로마 밖에 하루 이상 나가는 일 혹은 자기 침대가 아닌 곳에서 사흘 이상 자거나 군대 업무를 보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버린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소년시절 선출된 사제직은 폰티펙스가 아니라 플라멘이었고, 그래서 카이사르도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참고로 [[로마군]]은 선출직인 집정관이나 법무관이 지휘했으므로 정계 진출에는 군 경력이 거의 필수적이었다.] 플라멘 직을 자진 사퇴하는데 이 부분을 완전히 빼먹고 사제로 선출된 것만 서술했다. 아마도 카이사르가 정계의 거물이 되면서 취임한 폰티펙스 막시무스(최고신관)와 혼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이었던 시절 원로원이 폼페이우스의 군단병에 배급할 토지 분배를 놓고 언쟁을 벌일 때 원로원들과 카이사르의 세력이 민중 집회에서 차례대로 연설을 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하지만 [[아피아노스]]의 '내전기'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원로원을 배제한 채 평민집회를 열었으며 이를 안 원로원 의원들이 달려가자 민중들을 동원해 이들을 구타하였으며, 이때 동료 집정관이었던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는 주위의 폭도들에게 잡해 '죽일 테면 죽여라'라며 외치다 카이사르에 의해 끌려나갔다. 카토는 연단에 몰래 올라가서 민중들 상대로 자신의 견해를 말하려고 하였으나 폭도들은 카토를 잡고 무리 밖으로 끌어내려버렸다. 이 밖에 플루타르코스가 쓴 소(小) 카토 전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카이사르의 지휘 아래 원로원 의원들이 참석하였으며 이들 앞에서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차례대로 연설을 하였고 비불루스가 거부권을 행사하려 들자 민중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카이사르와 그 일당들이 원로원 의원들의 참석자체를 물리적으로 저지하였기 때문에 이런 연설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카이사르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면서 로마를 재창조하였고 이로써 400년간 로마의 수명을 연장시켰다고 말하는데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공화정을 전복시키고 동양 그리고 [[아프리카]] 부족들도 할 수 있는 왕정으로 대처한 것이 어째서 재창조인지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다만 당시 로마 공화정이 로마인 및 원로원 위주의 엘리트로 변해갔던 것은 사실이라 이 점에서 개선되었다고 평가한다면 의외로 설명이 정확할 수도 있다. 이를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600명에게는 평가가 좋지 않았고 6천만 명에는 호평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 또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제패가 전무후무한 군사적 업적인 것으로 칭송하는데, 당시 갈리아는 [[게르만족]]에게 복속되기 일보 직전에 놓였으며 따라서 [[게르만족]] 대신 불러들인 게 카이사르였다. 카이사르는 이런 갈리아의 정세를 이용하여 [[게르만족]]을 격파한 뒤 이에 불만을 품은 친게르만파 갈리아족을 패주시키고 관용을 베푸는 것만으로도 갈리아족을 쉽게 제패할 수 있었다.[* 가령 만일 [[게르만족]]이 카이사르를 패주시킨 뒤 불만을 품은 친로마파 갈리아족을 패배시켰으면 갈리아 전역은 [[게르만족]]이 제패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로마인에게 적대적인 민족 위주로 살고 있는데 로마가 쳐들어온 게르마니아나 혹은 브리타니아 제패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는 7년만에 재패했는데 왜 아우구스투스는 수십년간 게르만족의 엘베강까지의 지역을 제패하지 못했고 또한 클라우디우스 때 브리타니아를 제패하는 것이 30년 정도가 걸렸느냐라며 비교하는데 이러한 직접적인 비교는 문제가 있다. 마치 폼페이우스는 군단을 이끌고 동방으로 오자마자 셀레우코스를 멸망시키고 유다를 점령하는데 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수백년간 셀레우코스와 싸웠으면서도 이것을 해내지 못했냐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 [[카이사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극에 달한 나머지 카이사르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무조건 카이사르 위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카이사르의 물주였던 [[크라수스]]와의 관계의 경우, 당대나 근현대나 거의 모든 역사가들이 크라수스가 카이사르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관계로 보고 있으나,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카이사르가 막대한 빚을 무기로 크라수스를 역으로 조종했다는 신기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로마 제일의 부호였던 크라수스에게 카이사르에게 준 돈이 과연 그정도 가치가 있었을까? 각종 사료를 참고해 볼때 크라수스는 시오노 나나미가 묘사하듯이 돈만 많고 정치력은 조금도 없는, 카이사르에게 질질 끌려갈만한 얼간이가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권에 나선 후 '''단 한 번도 크라수스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유능하고 정열적인 카이사르의 맹활약 덕분에 크라수스는 유력 정치인의 한 명에서 [[삼두정치|공화정 로마 최고의 실권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즉 크라수스 입장에서는 '''그만큼 본인에게 이익이 되었기에''' 카이사르에게 돈을 퍼 준 것이다. 물론 물주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면서도 은근슬쩍 자신의 입지를 다져놓고 나중에 단숨에 로마 최고의 실권자로 올라설 준비를 착실히 한 카이사르의 역량은 충분히 칭찬할 만 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걸 카이사르가 크라수스를 쥐고 흔들었다는 식으로 묘사해서 문제지. * 사실 당시 로마에서 유력 정치인이 자금 지원을 무기로 유능한 신진 정치인을 후원하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앞잡이로 쓰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는데, 또 다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같은 책에 묘사된 카이사르와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의 관계다. 카이사르는 쿠리오의 막대한 빚(6천만 세르테르티우스)을 대신 갚아주면서 그를 포섭했고, 쿠리오는 호민관으로서 카이사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원로원에서 맹활약한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는 크라수스(채권자)-카이사르(채무자) 관계는 빚을 무기로 [[카이사르|채무자]]에게 주도권이 있었다고 묘사하더니, 카이사르(채권자)-쿠리오(채무자) 관계는 "원대한 포부를 제시하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설득[* 이것도 어디까지나 카이사르가 그런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추측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로 남은 건 카이사르가 쿠리오에게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해 주고 쿠리오는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했다는 것으로, 왕년의 채무자가 채권자가 된 것만 빼면 크라수스와 카이사르의 관계와 다를 것이 없다.]", "충실하고 정열적인 카이사르의 젊은 동지"라는 식으로 온갖 수식어를 갖다붙이며 채무자가 [[카이사르|채권자]]의 의지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로남불]]. * 갈리아 전쟁 이야기를 할 때 만화 [[아스테릭스]]를 언급하면서 그나마 카이사르가 안 나온 게 다행이라고 평하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아스테릭스)|멀쩡하게 등장한다]].[* 이 만화에서 카이사르는 주인공 아스테릭스의 적이긴 하지만 이들과 다투기는 해도 반대로 이들의 편을 들어주기도 하고 협력도 하는 등 완전히 적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이 만화에서 카이사르는 주인공 아스테릭스보다는 오히려 자기 휘하의 무능한 부하들과 유능하지만 반란을 꾀하는 부하들과 더 자주 싸우고 이는 아스테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아스테릭스가 속한 골족의 영약을 훔쳐서 먹은 다음 카이사르에게 반란을 꾀하려는 자들이 아스테릭스와 카이사르에게 있어서 공통의 적이기 때문. 사실 카이사르 입장에서는 소규모에 딱히 카이사르와 로마에게 적대적이지도 않은 골족 마을을 공격하는 건 거의 자기만족에 불과하고(다른 마을들은 이미 카이사르에게 굴복한 상태다.) 골족 마을에서도 귀찮기만 할 뿐인 로마와 별로 싸울 생각 자체가 없고 상술한 대로 공통의 적도 있어서 생각보다 적대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 내전 당시 폼페이우스를 따라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남은 [[키케로]]를 카이사르가 설득하러 갔으나 실패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키케로에게 로마행을 요청한 것은 사실 그것을 막기 위한 훼이크였다. 모든 건 카이사르의 [[계획대로]]..."라는 [[정신승리]]를 구사하고 있다. 당시 카이사르가 이탈리아를 장악한 상황에서 키케로가 대다수 원로원 의원과는 달리 폼페이우스와 동행하지 않고 이탈리아에 남은 것은 카이사르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기를 지지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로마 제일의 연설가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키케로에게 로마에 가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키케로는 그것을 거부하였고, 카이사르는 큰 실망을 안고 로마로 돌아간다. 사실 이렇게 묘사하는 게 좌절도 하고 그걸 극복도 하는 카이사르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잘 드러낼 수도 있었을 텐데, 시오노 나나미에게 카이사르는 좌절 따윈 하지 않는 [[완전체]]인지라...--로마판 창천항로의 조조인 것이다!-- *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관계에서 카이사르가 키케로를 여러 번 도와 준 것만 언급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카탈리나 반역 사건 당시 카이사르가 이 음모에 관련되었다는 참소가 끝도 없이 들어왔으나[* 사실 대부분은 뜬소문이거나 카이사르와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흠집내기에 가까웠다.] 당시 집정관이었던 키케로는 끝까지 자신은 무관하다는 카이사르의 손을 들어 주었고, 카탈리나 일파 처리에 대한 원로원 재판 후 그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주장한 카이사르가 성난 민중들한테 곤욕을 치뤘을 때 그를 보호해 준 것도 키케로였다. 이런 걸 다 빼먹고 카이사르가 키케로를 도와준 것만 강조하다 보니 졸지에 키케로만 은혜도 모르는 찌질이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는지도. * 그러다 보니 카이사르에게 불리한 일화는 은근슬쩍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카이사르는 첫 번째 법무관 재임 당시 폭력 시위를 주동하고 원로원의 권위를 무시하는 등 분별 없는 행동으로 직위를 시작하고 몇 주만에 법무관에서 해임당했는데, 곧바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 다시 복직된 적이 있다.[*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의 처조카라는 신분과 안찰관 시절 활동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해임당하자 시민들이 시위를 할 정도였고, 원로원 역시 명문 귀족 집안의 가장인(즉 원로원 위원들과 같은 부류인) 그가 공직에서 추방당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카이사르가 꼬리를 내리자 바로 다시 복직시켜 준다.] 아직 정치적 풋내기였던 카이사르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서 벌어진 일종의 '사고'인 셈인데, 카이사르가 원로원 앞에 고개 숙인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는지 이런 이야기는 로마인 이야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 보나 데아 제전 당시 명문 귀족인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가 여장하고 카이사르의 집에 숨어 들어왔다가 들켰고 결국 카이사르가 아내와 이혼한 사건이 있었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네토리|남의 여자 뺏기]]의 대가 카이사르가 [[네토라레|아내를 뺏긴]] 남자로 보이는게 싫었던지 클로디우스와 카이사르의 아내 폼페이아가 불륜 관계였던 것은 쏙 빼먹고 클로디우스가 폼페이아를 짝사랑해서 침입했다고 쓰고 있다. * 카이사르가 어머니와 동침하는 꿈을 꾼 후 점술가에게 그가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해몽을 들었다는 에피소드에서, 사실은 그냥 동침이 아니라 '''[[강간]]'''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 속의 일이며 카이사르 본인도 꿈 내용에 크게 당황했다고 하니 그의 도덕성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나, 그래도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더렵혀질까 걱정했는지 깨알 같은 배려심을 발휘해 강간 대신 동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듯 하다. * 카이사르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극에 달한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카이사르의 변호사 시절은 실패의 연속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키케로를 비롯한 당대의 기록에는 카이사르의 변론은 매우 우아하고 설득력이 높았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카이사르 본인도 자신의 변론기록을 출판했을 정도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재판의 결과 자체는 패배로 끝난 건 사실이지만, 당시 속주 총독의 직권남용에 대한 재판에서 승소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당시 속주 총독에 대한 재판의 배심원들은 원로원 의원 내지는 부유한 [[기사계급]]이었다. 그런데 원로원 의원들은 이미 속주 총독을 하면서 크게 해먹었거나 아니면 앞으로 총독을 맡아서 해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닌게, 당시 일반적인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공공연하게 권력의 정점인 집정관이 아니라 그 후에 속주 총독으로 부임해서 한 몫 제대로 챙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또한 [[기사계급]] 역시 원로원 의원들의 속주 수탈에서 실무를 맡아 속주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장본인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속주 총독의 부정에 대한 제대로 된 재판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사람도 있는데, 바로 [[키케로]]. 키케로는 시칠리아 총독 가이우스 베레스에 대한 탄핵재판에서, 그것도 당시 로마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한 상대에게 완승을 거두고 단숨에 로마의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여기에는 키케로의 탄핵이 워낙 날카로운 탓도 있었고, 베레스의 속주 수탈이 속주 총독들의 부정부패가 일상이었던 당대의 기준으로 봐도 지나치게 과했던 탓도 있었다.], 카이사르의 변호사 경력은 대중과 원로원에게 자신의 뛰어난 언변을 보여주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면에서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으로 보아야 한다. 작가가 유독 카이사르의 변호사 경력만 실패로 묘사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저술에서 일관적으로 보이는 '''지식인에 대한 혐오'''에서 비추어볼 때, 카이사르에게 지식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 이미지를 씌우기 싫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 역시 카이사르 신격화 문제인데, 키케로가 [[소 카토]]의 자결을 칭송하는 ‘카토’라는 글을 발표하여 로마에 카토 동정론이 형성되자 카이사르가 이에 대항하여 직접 '''[[안티]] 카토'''라는 제목으로 카토를 디스하는 글을 써서 발표했는데, 원문은 현존하지 않는다. 시오노는 이 글에 대해 카이사르가 카토를 논리적으로 비판한 글이었을 거라고 미화하지만 다른 사료에 전하기로는 카토의 음주벽과 아내와 이혼하고 친구와 결혼시켰다가 그 친구가 죽자 아내와 재결합한 일 등을 들춰내 ‘아내 팔아먹은 알콜중독자 샛퀴’로 매도하는 등 아주 직설적인 비방글이었다고 한다.[[https://m.blog.naver.com/lord2345/50104408374|#]] 역시 ‘나의 카이사르가 그럴리 없어!’ 심리의 발로로 보인다. * 탑수스 전투를 왜곡해서 묘사하고 있다. 탑수스 전투는 먼저 보병은 우측에 제 9,10군단, 좌측에 제 14,13군단 그리고 중앙에 3개 군단을 기본적으로 배치 후, 제 5군단을 좌우측에 나누어 종심을 두텁게 하였고, 기병은 양익에 배치한 정석적인 회전이었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무슨 생각인지 중앙에 기병을 배치해서 중앙 돌파 후 포위 섬멸했다고 창작해서 서술해 놓았다. * [[악티움 해전]] 당시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아그리파]]가 군함에 '한팍스라는 화기(火機)를 장착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기술했으나, 이는 포에니 전쟁 시기 로마 군선에 장착되었던 등선육박전용 사다리인 [[코르부스]]를 대체한 갈고리밧줄인 '[[https://en.wikipedia.org/wiki/Harpax|하르팍스]]'를 잘못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화기라고 기술한 것을 보면 후대의 [[그리스의 불]]과 혼동한 듯.[[http://egloos.zum.com/moduru76/v/438741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